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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도(香徒)와 민간 불교 신앙생활

사천 흥사리 매향비

1. 개요

향도(香徒)는 향(香)을 매개로 한 불교 신앙 조직이자, 촌락 단위로 형성된 지역 공동체입니다. 이는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불교 신앙을 실천하는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향도는 탑과 불상 조성, 종 주조 등 불교 조영물 제작을 통해 깨달음과 해탈을 바라는 신앙 활동에 집중했습니다.

특히, 향도의 기원은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고려 시대에는 더욱 활발히 발전했습니다. 고려 후기와 조선 초에는 매향(埋香) 활동이 크게 유행하면서 민간 신앙의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현생의 위기 극복과 미륵불(彌勒佛)의 하생을 기대하는 공동체의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2. 향의 전래와 향도의 발생

향도의 발생은 불교와 함께 도입된 향(香)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향은 신라 눌지왕(재위 417 - 458) 때 중국 양나라에서 전래된 것으로 전해지며, 이후 신라 소지왕(재위 479 - 500) 때에는 궁궐에서 향을 피우며 불사(佛事)를 행하는 승려가 등장했습니다.

『삼국유사』에서는 김유신(金庾信)의 화랑 활동을 '용화향도(龍華香徒)'라 칭하며, 미륵 신앙과의 관련성을 보여줍니다. 향도의 구성원들은 탑을 세우고 종을 주조하는 등의 불사를 통해 공덕을 쌓고 신앙심을 표현했습니다.

 

3. 향도의 발전과 민간 신앙의 확산

향도는 신라 후기 지방의 불교 신앙 확산과 함께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신라의 중앙 집권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지방에서는 호족과 향리가 중심이 되어 향도를 조직하고, 독자적인 불사를 진행했습니다.

고려 시대에도 향도의 활동은 지방 사회를 중심으로 이어졌습니다. 경기도 죽주 장명사의 5층석탑 조성이나 경북 예천 개심사의 미륵향도와 추향도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향도의 활동은 지역의 향리가 주도하며 불교 신앙을 지역 사회에 정착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1131년 인종 때에는 만불향도(萬佛香徒) 같은 조직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는 당시 빈곤층이 향도를 활용해 생계를 유지하며, 상업 활동과 유희를 통한 자구책을 모색한 사례로 해석됩니다.

 

4. 매향(埋香)의 유행과 의미

매향(埋香)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초까지 도서 및 연해 지역에서 유행했습니다. 이는 침향(沈香)을 땅에 묻고 미륵불이 하생하기를 기원하는 신앙 의식으로, 미륵 신앙과 깊이 연결되었습니다. 매향처는 미륵불이 내려올 장소로 여겨졌으며, 매향을 통해 공동체는 현세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종교적 구원을 기원했습니다.

매향은 특히 사회적 불안과 위기 상황에서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연해 지역에서는 농업의 확장과 인구 유입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가운데 왜구의 침입과 사회 문제에 대한 대응책으로 매향 신앙이 확대되었습니다.

 

5. 매향비의 사례와 의미

매향의 흔적은 오늘날 여러 매향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매향비로는 당진의 경술년매향비와 경오년매향비, 사천매향비, 삼일포매향비 등이 있습니다. 이들 매향비는 당시 공동체가 미륵 신앙을 통해 종교적 구원과 사회적 결속을 추구했음을 보여줍니다.

매향비에 새겨진 발원문에는 공동체의 공덕이 개인뿐만 아니라 왕과 국가 전체에 미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매향 활동이 단순한 종교 행위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안정과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시사합니다.

 

6. 결론

향도와 매향 신앙은 한국 불교의 민간 신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향도는 신라 시대부터 시작되어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민간 사회에 뿌리내린 신앙 조직이었습니다. 매향은 연해 지역을 중심으로 한 불교 신앙 활동으로,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사회적 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이러한 향도와 매향의 신앙 활동은 단순한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발전해 온 민간 신앙의 중요한 사례입니다. 오늘날 매향비와 같은 유산은 당시 공동체의 염원과 신앙심을 후대에 전하는 중요한 문화재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