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함안 말이산 고분군(咸安 末伊山 古墳群)은 아라가야의 지배층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유산입니다. 사적 제515호로 지정된 이 고분군은 도항리와 남문외 고분을 포함한 넓은 영역을 포괄하며, 지정 면적은 약 778,820㎡에 이릅니다. 이는 고령 지산동 고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고분군으로, 아라가야의 문화적 정점과 정치적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남북으로 약 2㎞에 걸쳐 이어진 능선에는 127기의 봉토분과 1,000여 기에 이르는 중소형 고분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고분군의 배치 형태는 대형 무덤이 능선 정상에 조성되고, 중소형 무덤은 경사면에 분포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이곳에서 출토된 갑옷류, 말갖춤류, 환두대도(環頭大刀) 및 사슴 모양 토기와 같은 상형토기는 당시 생활상과 문화를 추측하게 하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2. 아라가야 지배층의 무덤 구조와 발굴 과정
1900년대 초 일본 학자들에 의해 처음 조사된 이후, 본격적인 발굴은 1980년대에 가야문화권 학술조사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말이산 고분군의 구조와 무덤 축조 방식이 체계적으로 밝혀졌습니다.
특히 마갑총(馬甲塚) 발굴은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신라의 천마총처럼 목곽 안에서 말갑옷이 발견된 마갑총은 아라가야의 독창적인 마장문화(馬裝文化)를 보여주는 유일한 유적입니다. 이러한 자료는 5세기 무렵 아라가야의 상류층이 말과 갑옷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보여주는 귀중한 증거입니다.
또한, 도항리 6호분에서는 석곽의 벽에 들보 시설이 확인되었고, 피장자와 순장자의 배치에서 사회적 위계와 의례적인 특징이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무덤들은 봉분 축조 과정에서도 세심한 단계가 있었음을 보여주며, 왕의 무덤과 주변 배장묘가 짧은 시간 내에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아라가야의 권력 구조를 엿볼 수 있습니다.
3. 순장과 주칠의 흔적: 독특한 장례 문화
아라가야의 무덤에서는 순장(殉葬) 문화가 뚜렷하게 확인됩니다. 순장자는 주로 피장자의 측근 인물들로 구성되었으며, 한 무덤에서 최대 6명 이상의 순장자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주칠(朱漆)로 칠해진 무덤의 흔적입니다. 말이산 13호분의 경우 붉은 안료로 내부를 칠한 채색 고분으로, 이는 가야 고분에서는 매우 드문 사례입니다. 이러한 주칠 흔적은 당시 사람들의 사후 세계에 대한 인식과 신앙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또한, 말이산 13호분의 뚜껑돌 안쪽에 별자리로 추정되는 성혈(星穴) 약 125개가 발견되어 천문학적 인식과 내세관을 반영합니다.
4. 상형토기: 단순한 모방을 넘어선 예술
함안 말이산 고분에서는 다양한 상형토기(象形土器)가 발견되었으며, 이는 고대 사람들의 예술적 감각과 상징성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대표적으로 2019년 조사된 사슴 모양 토기는 그 정교함과 아름다움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사슴의 우아한 모습을 본떠 만든 이 토기는 사슴의 신성함과 영혼 보호의 상징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같은 유적에서 발견된 집 모양 토기는 당시 아라가야의 건축 양식을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이 집 모양 토기는 고상식 구조로, 지붕과 굴뚝까지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어 실제 건축물과의 연관성을 보여줍니다. 배 모양 토기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배의 상징성을 담고 있으며, 이와 같은 상형토기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고대 의례와 신앙을 반영한 예술작품으로 평가됩니다.
5. 말이산 고분군과 아라가야의 최전성기
말이산 고분군은 아라가야의 정치적·문화적 전성기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평가됩니다. 5세기 중엽부터 6세기 초까지 형성된 이 고분군은 아라가야의 확장된 세력권과 내부 통합을 상징합니다.
또한, 말이산 고분군과 근접한 남문외 고분과 전 안라왕궁지는 아라가야 왕실의 거점으로 추정됩니다. 남문외 11호분에서는 아라가야뿐만 아니라 백제, 신라와의 교류를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었습니다. 이러한 고분들은 당시 아라가야의 정치적 네트워크와 대외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6. 결론: 아라가야의 영광을 담은 말이산 고분군의 가치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단순한 무덤의 집합체를 넘어, 아라가야 지배층의 위상과 문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보고입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다양한 유물과 상형토기는 당시 사람들의 예술적 감각, 정치적 위계, 그리고 내세관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말이산 고분군의 연구와 발굴은 가야사 복원과 더불어 한국 고대사 이해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조사와 보존을 통해 아라가야의 문화와 역사가 더 깊이 밝혀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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