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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의 건국: 신라의 장군이 옛 백제 땅에 새로운 사회를 꿈꾸다

후백제(後百濟)는 통일신라 말기, 신라의 군인 출신인 견훤(甄萱)에 의해 건국된 국가로, 9세기 말 후삼국 시대를 열었다. 후백제는 신라를 타도하고 백제를 계승하겠다는 새로운 사회를 표방하며 출발했지만, 실제로는 신라의 정치적 기반 위에서 형성된 것이었다. 이 글에서는 후백제의 건국 과정과 국가 체제, 그리고 지방 통치 방식을 다루어보겠다.

후백제의 건국 시기

1. 사료 기록상의 시점과 실제 사건의 시차

후백제는 신라 조정의 통제가 약화되던 시기에 견훤이 반란을 일으키며 건국하게 되었다. 이 당시 신라 조정은 부패와 무능으로 국민의 고통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견훤은 이러한 상황에서 군대를 조직하고 신라에 반기를 들었다. 후삼국 시대의 전쟁에서 초기에는 후백제가 우세한 전력을 자랑했으나, 그 과정에 대한 기록이 부족해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견훤은 892년 신라의 장군으로서 스스로 왕이라 칭했지만, 이를 대외적으로 공표하지는 않았다. 이후 900년에 가서야 후백제의 왕으로서의 지위를 대내외적으로 알린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후백제의 건국 시점은 892년으로 보아야 할지, 900년으로 보아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있다. 여러 사료를 살펴보면, 892년이 보다 많은 지지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각 사료의 해석에 따라 사건의 전개가 달라질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2. 견훤의 건국 과정

견훤은 889년경 무진주(현재의 광주광역시)에 자리를 잡고 스스로 왕이 되었으나, 당시에는 신라의 신하로 남아 있었다. 892년 완산주(현재의 전주)를 점령하고 도읍을 정했으며, 이로 인해 후백제의 정체성이 더욱 뚜렷해졌다. 900년에는 왕으로서의 권위를 대외적으로 확립하며 후백제의 건국을 선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견훤은 자신의 지배권을 확보하고 국가 체제를 정비하는 데 주력했다.

 

후백제의 국가 체제

1. 백제를 계승하였으나 신라의 체제를 따르다

후백제는 건국 이후 국가 운영의 기반이 되는 관부를 설치하고, 관직을 나누어 지배 체제를 갖추었다. 후백제는 과거 백제가 자리하던 지역인 전라도 일대를 근거로 하여, 백제의 후예임을 내세우며 백성의 지지를 얻기 위해 국호를 '후백제'로 정했다. 그러나 국가 운영 체제는 신라의 체제를 많이 반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견훤은 대외적으로 백제를 계승하는 국가를 표방했지만, 실제 관직과 체제 운영에서는 신라의 영향을 받았다. 후백제의 관직명으로는 이찬(伊湌)이나 파진찬(波珍湌) 등이 있으며, 이는 신라에서 사용되던 관직 체계와 유사하다. 이러한 구조는 견훤이 신라에서 군인으로서 활동한 경험이 크게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2. 관부와 관직의 설치

후백제는 900년 대외적으로 왕국의 존재를 알리고, 관부를 설치하며 관직을 정비했다. 국호와 연호를 제정하고 도읍을 완산으로 옮기면서,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체제를 정비하였다. 그러나 국가 운영의 구체적인 방식에 대한 기록이 부족하여, 후백제가 어떻게 운영되었는지는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후백제의 지방 지배 방식

1. 중앙의 직접 지배

후백제는 중앙에서 지방을 직접 지배하는 방식을 채택하기도 했다. 왕도인 완산주와 그 인근 지역에서 이러한 방식이 주로 적용되었으며, 견훤은 불교 사상을 활용하여 민심을 다스렸다. 이 지역은 백제 시대부터 불교 사찰이 많아, 불교를 통한 통치가 효과적이었다.

2. 지방관 파견과 귀부 세력

또한, 후백제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지방관을 파견하는 방식으로 지방을 통치했다. 귀부(歸附)나 내투(來投) 호족과의 결합을 통한 간접 지배 방식도 있었다. 이 방식은 후백제가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지역 호족의 힘을 인정하면서도, 후백제의 지배 아래 두는 전략이었다.

 

결론: 후백제의 의의와 한계

후백제는 신라의 군인인 견훤에 의해 건국되었으며, 백제를 계승하는 것을 표방했다. 그러나 국가 운영 체제는 신라의 체제를 따르며 형성되었다. 후백제의 지배 방식은 중앙의 직접 지배와 간접 지배 방식을 혼합한 형태로, 호족과의 결합을 통해 지역 사회의 안정과 지지를 얻으려 하였다.

견훤의 정복 사업은 초기에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후에 고려의 왕건에게 패배하며 후백제는 멸망하게 된다. 후백제의 역사는 당시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 새로운 국가 건설의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신라의 잔재와 고려의 부상 속에서 한계에 부딪혔던 사건으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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