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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법왕: 불교를 통한 왕권 강화와 호국불교의 발전

백제의 법왕

1. 개요

법왕(法王, 재위 599~600년)은 백제의 제29대 왕으로, 짧은 재위 기간 동안 불교 윤리를 사회 전반에 확대하고자 노력했던 인물이다. 그의 치세 동안 왕흥사 창건과 금살생령(禁殺生令) 반포와 같은 정책이 시행되며, 이를 통해 왕권 강화와 불교적 통치 기반을 다졌다.

즉위 첫 해에 살생을 금하는 명령을 내리고, 다음 해에는 왕흥사를 창건하여 30명의 승려가 출가하도록 허용했다. 이러한 불교 장려 정책은 단순한 종교적 차원을 넘어, 왕권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도 해석된다.

 

2. 법왕의 즉위 과정에 대한 논란

법왕의 본명은 선(宣) 또는 효순(孝順)이며, 부여씨(扶餘氏) 가문 출신이다. 대부분의 문헌에서는 그가 제28대 혜왕(惠王)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수서(隋書)』에는 제27대 위덕왕(威德王)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어 출생에 대한 논란이 있다.

법왕의 즉위 과정 역시 복잡하다. 위덕왕의 사후, 고령의 혜왕이 즉위한 후 법왕이 왕위를 계승했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법왕이 실질적인 정변을 통해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했다는 설도 있다. 이와 반대로, 위덕왕의 동생인 혜왕이 왕권을 유지하며 법왕에게 왕위를 물려준 자연스러운 계승 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백제의 법왕

3. 법왕대 호국사찰의 창건

법왕의 치세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호국사찰인 왕흥사(王興寺)의 창건이다. 왕흥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왕실의 안녕과 국가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한 호국불교의 상징적인 사찰이었다.

왕흥사의 건설은 법왕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634년(무왕 35년)에 이르러 완공되었다. 이는 법왕의 아들 무왕(武王)이 왕흥사의 건립을 계승했음을 보여준다. 이 사찰 창건은 백제 왕실의 불교적 기반을 강화하는 동시에, 왕권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법왕대에 창건된 오합사(烏合寺)금산사(金山寺)와 같은 사찰들도 주목된다. 이들은 전쟁에서 희생된 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어, 백제의 호국불교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법왕의 사찰 창건은 수도뿐만 아니라 지방으로도 불교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4. 법왕의 금살생령과 그 의의

법왕은 즉위 직후 살생을 금지하는 금살생령(禁殺生令)을 반포했다. 이 명령을 통해 민간에서 기르던 매를 풀어주고, 어로와 사냥 도구를 불태우게 했다. 이는 불교적 윤리를 사회에 확대하려는 정책으로 해석되며, 귀족들의 무기 회수를 통해 그들의 군사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다.

특히 금살생령의 시행과 왕흥사의 창건이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 점은 주목할 만하다. 금살생령은 왕흥사의 호국적 성격과 연결되며, 단순한 윤리적 규범의 확산을 넘어 왕권 강화를 위한 전략적 조치였음을 알 수 있다.

5. 법왕대 불교정책의 의미와 평가

법왕의 불교정책은 크게 계율종(戒律宗)법화신앙(法華信仰)의 두 가지 사상적 기반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계율종은 겸익(謙益)의 활동 이후 백제 불교의 주요 특징이 되었으며, 불교적 윤리와 국가 통치를 결합하여 왕권을 뒷받침했다. 법왕이 금살생령을 통해 귀족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민간에 계율을 확산시킨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법왕대에 유행한 법화신앙은 왕권 강화를 위한 사상적 배경으로 기능했다. 법화경(法華經)을 경전으로 삼은 법화신앙은 왕실 중심의 불교적 통치를 뒷받침하며, 성왕 이후 지속된 왕권 강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법왕의 불교정책은 수도뿐만 아니라 지방까지 불교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왕흥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이 수도 외곽과 지방에 건립됨으로써, 불교는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불교의 확산은 이후 무왕대 익산의 미륵사(彌勒寺) 창건으로 이어지며, 백제의 국가불교적 전통을 공고히 했다.

결론

법왕은 짧은 재위 기간에도 불구하고 불교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사회 전반에 불교 윤리를 확산시키는 데 주력했다. 그의 정책은 단순한 종교적 장려에 그치지 않고, 귀족 세력의 약화와 왕권 강화를 동시에 목표로 삼았다.

왕흥사와 같은 호국사찰의 창건과 금살생령의 반포는 이러한 의도의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계율종과 법화신앙을 바탕으로 한 불교정책은 법왕의 통치가 백제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을 잘 보여준다. 법왕의 정책은 이후 무왕대에도 이어지며, 백제의 불교와 왕권 강화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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