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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왕 대조영의 생애와 발해 건국

대조영 표준영정

대조영(大祚榮)이란 누구인가?

고왕(高王) 대조영(大祚榮)은 719년까지 재위하며 발해(渤海)를 건국한 초대 군주입니다. 그의 출신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고구려의 옛 장수였던 그는 698년에 나라를 세워 발해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그의 생애와 발해의 건국 과정은 고대 동북아시아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상징합니다. 이 글에서는 대조영의 출자와 발해 건국의 배경, 역사적 의의를 중심으로 정리합니다.

대조영의 출자(出自)에 대한 기록의 차이점

대조영의 출신에 대해서는 다양한 역사서에서 서로 다른 주장이 존재합니다. 중국과 한국, 각국의 사서들에 따르면 대조영이 고구려인인지 말갈인인지에 대한 기록이 엇갈립니다. 주요 사서에서의 기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 사서의 기록

  • 『구당서(舊唐書)』: “대조영은 발해말갈의 사람이며, 고구려의 별종이다.”
  • 『신당서(新唐書)』: “발해는 속말말갈에서 나왔고 고구려에 붙었던 자들이다.”

중국의 역사서는 대조영이 속말말갈 출신이지만 고구려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고 기술합니다. 이는 발해를 고구려와 말갈의 혼합적인 국가로 보는 관점입니다.

한국 사서의 기록

  • 『삼국유사(三國遺事)』: 고구려의 장군 출신인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을 모아 발해를 세운 것으로 기술됩니다.
  • 『제왕운기(帝王韻紀)』: 대조영을 단순히 고구려의 옛 장수라고 언급합니다.
  • 『고려사(高麗史)』: 발해를 고구려의 후예 국가로 강조합니다.

한국 측 사서는 발해의 고구려적 요소를 부각하며, 대조영을 고구려계 인물로 묘사합니다.

말갈적 요소의 부각

  • 최치원과 『통전(通典)』에서는 대조영을 속말말갈 출신으로 기록합니다. 말갈적 요소를 강조한 이러한 기록은 대조영과 발해가 고구려뿐 아니라 말갈 문화와의 깊은 연관성을 가졌음을 시사합니다.

 

대조영의 출신 논쟁: 고구려인인가, 말갈인인가?

대조영의 출신에 대한 논쟁은 단순히 그의 개인적 배경을 넘어서 발해의 국가 정체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발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각국의 사서와 역사적 해석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 중국과 러시아: 발해를 말갈계 국가로 보며, 중국사의 일부로 인식합니다.
  • 한국과 북한, 일본: 발해를 고구려계 국가로 규정하며, 고구려의 계승자로 봅니다.

이러한 역사적 시각 차이는 발해가 당나라에 종속된 지방 정권이었는가, 독립된 국가였는가에 대한 해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대조영의 배경과 활동: 혼합된 정체성

말갈은 여러 부족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조영의 출신으로 언급된 속말말갈(粟末靺鞨)은 송화강(松花江) 유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집단입니다. 이들은 고구려와 인접하며 고구려와 군사적 협력을 이어왔습니다.

645년 당나라와 고구려의 전쟁에서는 고구려와 함께 싸운 말갈인이 포로로 잡혀 학살당한 기록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고구려와 말갈이 단순한 이웃이 아니라 군사적 동맹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대조영의 집안도 속말말갈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걸걸중상(乞乞仲象)과 그 자신이 고구려로 이주하며 고구려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동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대조영이 한자 이름을 사용한 것은 고구려 사회에서의 정착과 동화를 상징합니다.

 

발해 건국
발해 건국

 

발해 건국의 과정과 의의

고구려 멸망 이후 대조영은 당나라의 영주(營州)로 강제 이주된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을 이끌고 발해를 건국합니다. 영주는 다양한 민족이 섞여 있는 지역으로, 대조영은 이곳에서 고구려인과 말갈인들을 규합하여 독립 국가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거란의 반란을 틈타 요동 지역으로 이동하며 대조영은 발해라는 새로운 국가를 탄생시킵니다.

발해는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였지만, 말갈의 요소도 포함하여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했습니다. 발해의 군사력과 문화는 고구려와 말갈의 융합된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결론: 대조영의 복합적 정체성과 발해의 역사적 위치

대조영은 고구려와 말갈의 정체성을 동시에 가진 인물로, 그의 생애는 발해의 국가적 성격을 규명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발해는 고구려의 후예 국가로서의 성격과 말갈적 요소를 융합하여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이러한 발해의 역사는 동북아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오늘날에도 한중일 3국 간의 역사 인식 문제와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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