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란?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8세기 초 신라에 전해진 불교 경전으로, 탑을 세우고 다라니(陀羅尼)를 염송하는 공덕을 설한 경전입니다. 이 경전은 탑과 다라니를 통해 불교 신앙의 실천을 독려하며, 인간의 고통과 두려움을 해소하고 궁극적으로 극락왕생을 도모하는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이 경전은 미타산(彌陀山)이라는 서역 출신 승려가 704년경 당나라 장안에서 한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주요 내용과 의의
2.1 다라니의 의미와 경전의 목적
‘다라니’는 불가사의한 주문으로, 부처와 보살의 서원이나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제목은 말 그대로 ‘더럽지 않고 깨끗하며 영롱한 빛을 지닌 다라니의 경전’을 의미합니다. 이 경전은 불교 신자들이 다라니를 염송함으로써 다양한 공덕을 누릴 수 있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2.2 경전의 설화적 배경
경전의 도입부에서는 불교를 믿지 않았던 겁비라전다(劫比羅戰茶)라는 바라문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두려워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는 부처에게 조언을 구하고, 이에 부처는 탑을 수리하고 다라니를 염송하면 죽음을 면할 뿐 아니라 극락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고 설법합니다. 이처럼 다라니의 힘을 통해 인간의 불안과 고통을 해소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경전의 핵심을 이룹니다.
2.3 다라니의 종류와 구체적 실천 방법
경전에서는 총 6개의 다라니와 그 공덕을 설명합니다. 각 다라니마다 정해진 수의 탑을 조성하고 염송하는 의식이 제시되며, 이를 통해 죄업 소멸, 장수, 병 치유 등 다양한 공덕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 근본 다라니: 77개의 소탑 제작을 권장
- 육바라밀 다라니: 탑을 소유한 자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존재들까지 공덕을 받을 수 있음
- 수조불탑 다라니: 다른 사람에게 탑 조성을 부탁해도 같은 공덕을 얻음
이처럼 다라니와 탑의 신앙은 경전 속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실천 방안을 제시하며, 신자들의 신앙 생활에 밀접하게 연결되었습니다.
3. 신라에서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수용과 영향
3.1 신라 사회에 미친 영향
신라에서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다수의 석탑을 조성했습니다. 이 경전은 신라인들의 종교적 필요에 부합하며, 다양한 기복 신앙을 담아냈기 때문에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망자를 위한 추복(追福), 병 치료, 재앙 방지, 장수 등 여러 소망을 충족하기 위한 경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3.2 신라 석탑에 나타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흔적
신라의 주요 석탑에서는 이 경전의 내용이 반영된 유물들이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황복사지 삼층석탑과 나원리 오층석탑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탑의 내부에는 다라니가 적힌 경전이 봉안되었으며, 작은 소탑이나 사리함에도 다라니가 포함된 경우가 많습니다.
- 나원리 오층석탑: 내부 사리함에서 자심인 다라니와 대공덕취 다라니 발견
- 화엄사 서오층석탑: 종이 다라니 뭉치 발견, 최소 28회 필사된 흔적
- 황룡사 구층목탑: 발원문을 통해 소탑 99기에 사리를 넣었다는 기록
이처럼 신라의 탑 조성 과정은 경전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며 이루어졌고, 다라니를 봉안하는 것이 탑의 신앙적 중심이 되었습니다.
4. 신라와 중국·일본의 비교: 독자적 불교 신앙의 발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그다지 유행하지 않았지만, 신라에서는 특별히 주목받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수용되었습니다. 이는 신라가 불교를 단순히 수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며 발전시킨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탑 안에 다라니를 봉안하는 신앙은 신라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바람을 반영하며, 당시 사회의 신앙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5. 결론: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신라의 불교 신앙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단순한 경전을 넘어 신라의 불교 신앙과 밀접하게 연관된 상징적 유산입니다. 신라인들은 이 경전을 통해 삶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으며, 탑과 다라니를 활용한 신앙적 실천을 적극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이로써 경전은 신라 사회에서 중요한 종교적 지침서로 자리 잡았고, 불교 신앙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함께 보면 좋은 관련글
'Education >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해·당 전쟁: 흑수말갈을 둘러싼 대립과 외교적 갈등 (0) | 2024.10.25 |
---|---|
발해·일본 관계: 상부상조에 담긴 동상이몽 (0) | 2024.10.25 |
혜초(慧超)와 『왕오천축국전』: 천축을 넘나든 고승의 여정과 밀교의 발자취 (0) | 2024.10.24 |
발해 무왕(武王) 대무예의 대당 정책과 등주 공격 (0) | 2024.10.24 |
신라촌락문서: 신라 지방 행정의 치밀함과 대민 지배의 단면 (0) | 2024.10.24 |
고왕 대조영의 생애와 발해 건국 (0) | 2024.10.24 |
발해 건국: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의 새로운 나라 (0) | 2024.10.24 |
대왕암: 살아서는 통일의 군주, 죽어서는 신라를 지키는 용이 되다 (0) | 2024.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