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발해·당 전쟁은 732년 발해가 당나라의 등주(登州)를 공격하면서 시작된 분쟁이다. 전쟁의 주요 원인은 발해의 동북 방면에 위치한 흑수말갈을 둘러싼 문제였다. 흑수말갈이 발해의 세력 확장에 불안함을 느끼고 당에 입조하자, 당은 이를 기회로 삼아 발해를 견제하고자 했다. 발해는 등주를 공격함으로써 외부의 압박을 선제적으로 무력화하려 했고, 이후의 대립은 당과 거란, 돌궐까지 얽힌 복잡한 외교 문제로 이어졌다. 결국 양국은 734년 협정을 맺고 평화롭게 전쟁을 종결하게 되었다.
2. 발해와 당의 외교관계 수립
발해는 고구려 멸망 이후 유민 세력이 중심이 되어 대조영에 의해 699년 동모산 지역에서 건국되었다. 발해는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주변국과 외교 관계를 도모하였고, 713년 당나라와 공식 국교를 맺었다. 당은 대조영에게 "좌효위대장군 홀한주도독 발해군왕"이라는 책봉을 내렸는데, 이는 당이 발해를 자신들의 기미(羈縻) 지배 하에 두고자 했음을 의미한다.
3. 흑수말갈의 대외무대 등장
발해는 왕위 계승 이후 무왕(대무예)의 지휘 아래 적극적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그러나 동북방에 위치한 흑수말갈은 발해의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당나라와의 외교를 강화했다. 흑수말갈은 당과의 교섭을 통해 흑수부(黑水府)로 편제되며, 당의 간접 지배를 받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발해와 흑수말갈 간의 긴장은 극에 달했고, 발해는 흑수말갈을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4. 형제의 갈등
발해의 무왕은 동생 대문예에게 흑수말갈을 공격하라고 명령했지만, 대문예는 당과의 외교적 충돌을 우려해 이를 반대했다. 고구려의 멸망을 예로 들며 당을 자극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한 대문예는 결국 형과 갈등을 겪고 당으로 망명했다. 당은 대문예를 보호하며 발해를 견제하기 위한 카드로 삼았다.
무왕은 사촌 대일하를 대신 흑수말갈 공격에 보내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대문예가 당에 망명한 사실은 발해와 당의 외교적 긴장을 더욱 고조시켰다.
5. 발해의 등주 공격과 당의 반격
732년 발해는 장문휴를 보내 당나라의 등주를 공격했다. 발해군은 등주자사 위준을 처형하고 철수에 성공했다. 이와 동시에 발해는 거란과 협력하여 당의 북부를 압박했다. 당은 대문예를 유주로 보내 발해를 공격하려 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또한 신라를 끌어들여 남쪽에서 발해를 공격하게 했지만 험난한 지형과 혹독한 날씨로 실패하고 말았다.
6. 발해와 당을 둘러싼 국제적 배경
발해가 당을 선제 공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국제 정세가 큰 영향을 미쳤다. 거란과 돌궐은 당에 대한 반발심을 공유하며 발해와 협력했다. 732년 발해의 등주 공격은 이러한 국제 연합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세력 균형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734년 돌궐의 가한이 사망하면서 내부 혼란이 발생했고, 거란은 당에게 패배해 다시 종속되었다. 신라 역시 발해를 단독으로 공격하면서 발해의 외교적 입지는 약화되었다. 발해 무왕은 이에 대응해 당과의 화친을 추진했고, 전쟁에서 포로로 잡은 당 병력을 돌려보내며 평화 협정을 맺었다.
결론
발해·당 전쟁은 발해가 당나라의 압박에 맞서 흑수말갈과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시작된 전쟁이었다. 발해는 국제 정세를 활용해 일시적으로 당에 대항했으나, 돌궐과 거란의 몰락으로 인해 결국 외교적 고립에 처했다. 무왕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당과 화친을 맺었고, 그의 사망 이후 발해의 강경 외교는 종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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