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발해와 일본은 8세기 초부터 외교적 교섭을 시작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양국이 신라를 견제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발해는 고구려의 후계 국가임을 내세우며, 일본은 자국 중심의 천하관에 따라 발해를 번국(藩國)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협력 관계를 유지했으나, 발해는 철저히 자국의 국익을 위해 움직였습니다. 발해가 멸망할 때까지 두 나라는 교역과 외교를 지속했으며, 다양한 마찰도 겪었지만 대체로 안정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발해와 일본 교섭의 시작
발해와 일본의 공식 교섭은 727년 발해 무왕(武王) 시기, 첫 번째 발해사가 일본에 파견되며 시작됩니다. 다만, 일본이 720년에 말갈 지역을 탐방한 기록을 통해 비공식 접촉이 그 이전에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발해의 지배층 대부분은 고구려 유민이었기에 일본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일본이 국호를 일본(日本)으로 바꾼 670년 이후 발해는 본격적으로 일본과 교섭을 추진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교섭 경로와 항로
양국 간 교류는 주로 동해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발해는 북회항로를, 일본은 동해 횡단 직행 항로를 이용했습니다. 발해의 사절단은 두만강 하구에서 출발해 홋카이도로 향했고, 일본은 노토(能登) 부근에서 발해로 향했습니다. 항해 중 표류와 같은 어려움이 빈번했으나, 양국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며 교섭을 이어갔습니다.
일본의 번국 인식과 발해의 대응
일본은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를 번국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일본의 역사서에서는 고구려, 보덕국(報德國), 발해를 모두 고려(高麗)로 묘사하며 자신들의 번국으로 인식했습니다. 일본은 발해에게 고구려의 선례를 따를 것을 요구하며 외교적 우위를 점하려 했지만, 발해는 일본의 요구를 수용하는 척하면서도 자주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습니다.
발해의 실리 외교: 일본과의 협상 전략
발해는 일본과의 외교에서 신라 견제와 상업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했습니다. 발해는 일본의 요구를 형식적으로 받아들이는 듯 보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이 츠쿠시(築紫)를 경유하라는 요구를 무시하고 북회항로를 이용한 것은 발해의 실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또한 발해는 사신단의 인원을 늘리고 일본에 자주 방문하여 무역을 확대했으며, 이는 일본의 불만을 사기도 했습니다.
발해와 일본의 무역 확대
발해는 일본에 사절단을 보낼 때 상업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많은 인원을 동원했습니다. 발해 사절단은 8세기 중반 이후 1,100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원으로 확대되었고, 이는 일본의 재정적 부담을 초래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발해와의 교역을 중단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발해 사절단을 위한 숙소를 마련하는 등 양국 간 무역을 지원했습니다.
발해와 일본의 관계 변화: 9세기 이후의 양상
9세기 초반, 발해와 신라의 관계가 개선되고 일본과 신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발해는 외교적 우위를 점하게 됩니다. 일본은 외국 상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고, 발해는 이를 이용해 상업적 이익을 극대화했습니다. 발해는 일본의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정중히 대접받았고, 일본은 발해와의 교역을 통해 필요한 물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았습니다.
발해와 일본의 교역 물품
발해는 일본에 다양한 물품을 공급하며 무역을 확대했습니다. 발해가 일본에 수출한 주요 물품은 담비, 호랑이, 곰, 표범의 가죽과 인삼, 산꿀 등이었으며, 당과 서역의 물건도 중개했습니다. 반대로 일본은 발해에 고급 비단과 금·은, 칠기와 구슬 등의 수공예품을 수출했습니다. 이러한 물품 교류는 양국 간 경제적 관계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결론
발해와 일본의 관계는 단순한 외교적 협력을 넘어 상업적 이익과 정치적 목적을 동시에 추구한 복합적인 관계였습니다. 발해는 일본의 번국 요구를 형식적으로 수용하는 듯했으나, 실질적으로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며 독자적인 외교 전략을 펼쳤습니다. 두 나라는 발해가 멸망하는 926년까지 긴밀한 교류를 유지했으며, 이러한 교역과 외교적 관계는 동아시아 국제 관계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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