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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慧超)와 『왕오천축국전』: 천축을 넘나든 고승의 여정과 밀교의 발자취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1. 혜초의 삶과 구법 여정의 시작

혜초(慧超, 약 700년경 ~ 미상)는 신라에서 태어나 당(唐)에서 활동하며, 불교의 근원을 찾아 인도와 서역을 순례한 승려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그는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라는 저술을 남겼으며, 이는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넘나들며 불교 문화를 직접 체험한 견문을 기록한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혜초가 신라를 떠나 당에 유학을 떠난 것은 당시 신라 승려들 사이에서 불교 학문을 깊이 연구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혜초는 구법(求法)의 일환으로 당에서 머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불법의 근원을 찾아 멀리 인도, 파키스탄, 페르시아, 중앙아시아까지 향했습니다.

 

2. 다섯 천축국을 순례하며

혜초는 723년경 성덕왕 22년에 광저우(廣州)에서 배를 타고 인도네시아를 거쳐 인도의 동해안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인도를 다섯 지역(五天竺)으로 구분했으며, 혜초는 이 모든 지역을 직접 탐방했습니다.

  • 동부 인도: 쿠시나가라와 바라나시 등 석가모니의 주요 성지를 순례했습니다.
  • 중부와 남부 인도: 불교가 융성했던 지역을 순례하며 현지의 종교와 생활 문화를 직접 관찰했습니다.
  • 서부 인도와 서역: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페르시아와 사라센제국까지 여행했습니다.

혜초는 이 순례를 통해 불교 경전뿐만 아니라 언어, 풍습, 경제, 종교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모았습니다. 그가 거쳐 간 여정은 이후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 돌아오는 경로로 이어졌으며, 이는 천축과 서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문화적 통로로 남게 되었습니다.

3. 『왕오천축국전』: 인도와 서역의 기록

『왕오천축국전』은 혜초가 직접 체험한 인도와 서역의 문화와 종교를 생생하게 묘사한 기록입니다. 이는 현장(玄奘)의 『대당서역기』와 함께 중요한 구법기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혜초는 각지에서 본 풍경과 민속, 경제 활동 등을 기록하며 5수의 오언시(五言詩)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고향 신라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긴 시는 그의 깊은 내면을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4. 둔황에서 발견된 필사본의 비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오랫동안 잊혔다가, 1908년 프랑스 학자 폴 펠리오에 의해 둔황(敦煌) 막고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현재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 중이며, 발견 당시에는 완전한 형태가 아닌 358.6cm 길이의 두루마리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 필사본은 혜초의 원본이 아니라 요약 정리본으로 보입니다.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에 인용된 내용과 비교할 때, 문체와 어휘가 일부 수정된 흔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의 정확성과 풍부함은 당시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자리 잡았습니다.

5. 중국 밀교의 중심에 선 혜초

천축 순례 이후 혜초는 밀교(密敎) 승려로서의 길을 걷게 됩니다. 밀교는 대승 불교의 한 갈래로, 주문(眞言)을 외우는 수행을 통해 즉신성불(卽身成佛)을 목표로 했습니다. 혜초는 금강지(Vajrabodhi)불공(Amogha-vajra)를 스승으로 모시며 밀교의 깊은 교리를 익혔습니다.

740년경, 그는 당 황제의 칙명으로 밀교 경전인 『대승유가금강성해만수실리천비천발경』을 번역하는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이 경의 서문을 작성한 혜초는 밀교의 교리와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후대의 수행자들에게 지침이 되는 해제를 남겼습니다.

6. 혜초의 유산과 한국 불교에 미친 영향

혜초는 신라로 돌아가지 않고 당에서 밀교 승려로 활동하다가 우타이산(五臺山)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의 활동은 단순한 구법 여행에 그치지 않고 한국과 중국 불교의 연결고리가 되었습니다. 특히 고려대장경에 수록된 『일체경음의』에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인용됨으로써, 한국 불교사에서도 그의 존재가 재조명되었습니다.

오늘날 혜초의 여정과 기록은 동서 문명 교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밀교 수행을 통해 신라와 당, 인도와 서역을 잇는 문화적 가교 역할을 했으며, 그가 남긴 『왕오천축국전』은 불교 문화사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가치도 지니고 있습니다.

 

결론

혜초는 불교 구법을 위해 목숨을 걸고 천축과 서역을 넘나들며 자신의 신념을 실천한 고승이었습니다. 그의 저서 『왕오천축국전』은 당시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역사적, 종교적, 사회적 상황을 담은 귀중한 기록으로,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연구 가치가 높습니다. 또한 밀교의 수행자로서의 삶은 불교의 다양한 종파가 융합되고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혜초의 여정은 불교도뿐만 아니라 인류 문화사에 큰 영향을 미친 한 인물의 도전과 헌신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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