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역사는 동아시아 고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수도를 여러 차례 옮긴 것은 발해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이유를 보여줍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발해의 수도 천도 과정과 그 의미를 중심으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1. 발해의 첫 도읍지: 동모산
발해는 698년 대조영이 동모산(東牟山)에서 세운 진국(振國)으로 시작됩니다. 이곳이 발해의 첫 도읍지로 선택된 이유는 천연의 방어적 지형과 고구려 유민들을 수용하기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동모산의 위치 논란과 정혜공주 묘
동모산의 정확한 위치는 오랜 기간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949년 중국 길림성 돈화시 육정산 고분군에서 정혜공주 무덤과 묘비가 발견되면서 이 지역이 발해의 초기 도읍지로 확정되었습니다. 정혜공주의 묘비에 따르면, 그녀는 발해 문왕의 딸로 진릉에 묻혔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발해 초기 왕릉이 위치한 지역이 바로 대조영의 도읍지였음을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성산자산성이 동모산과 동일시되면서 발해의 첫 도읍지는 현재의 길림성 돈화 지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동모산은 ‘구국(舊國)’이라 불리며 발해의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2. 현주로의 천도: 중경 현덕부의 등장
발해의 두 번째 수도는 현주(顯州)로, 나중에 중경 현덕부(中京 顯德府)로 불리게 됩니다. 이곳은 길림성 화룡현에 위치한 서고성으로 추정되며, 정효공주 무덤이 발견된 곳이기도 합니다.
무왕 시기의 천도와 배경
천보(天寶) 연간, 즉 742 - 756년 사이에 발해가 현주로 천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학자들은 주로 무왕(719 - 737) 시기에 현주로의 천도가 이루어졌다고 추정하며, 당시 군사적 필요성과 외교적 변화가 배경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3. 상경 용천부로의 천도: 발해의 전성기 시작
756년 문왕(文王)은 상경(上京) 용천부로 수도를 옮깁니다. 상경성은 현재의 흑룡강성 영안시에 위치하며 발해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안록산의 난과 천도의 이유
문왕이 상경으로 천도한 이유는 당나라에서 발생한 안록산의 난(755년)과 관련이 깊습니다. 안록산의 세력이 요동과 북경 지역까지 미치고 있었기에 발해는 외부 위협에 대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당과 거리를 두고 보다 안전한 지역인 상경으로 천도한 것입니다.
상경으로의 천도는 단순한 방어적 조치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문왕은 상경에서 발해의 문물과 제도를 정비하며 발해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4. 동경으로의 재천도와 정치적 혼란
문왕은 정원(貞元) 연간에 수도를 동경(東京) 용원부로 옮깁니다. 동경은 현재 길림성 혼춘시에 위치한 팔련성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천도는 발해 내부의 정치적 불안정을 반영합니다.
문왕의 말년과 내분
문왕의 정치적 추진력은 말년에 약화되었으며, 그의 후계자 대굉림이 일찍 사망하면서 왕권이 약화되었습니다. 문왕이 793년에 사망한 후 그의 후계자 대원의(大元義)가 왕위에 올랐으나, 이는 정상적인 승계가 아니었고 결국 그는 1년 만에 피살되었습니다.
5. 상경으로의 최종 천도와 발해의 멸망
5대 성왕(成王) 대화여(大華璵)는 즉위 후 수도를 다시 상경 용천부로 옮겼습니다. 이 천도는 발해의 마지막 천도로, 이후 926년 발해가 멸망할 때까지 약 130년간 상경은 발해의 수도로 유지되었습니다.
결론: 발해 천도의 역사적 의미
발해의 수도 천도는 단순한 행정적 이동이 아닌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필요에 따라 이루어진 복합적인 결정이었습니다. 동모산에서 시작된 발해는 현주와 상경을 거쳐 동아시아 강국으로 성장했습니다. 각 천도는 그 시기의 발해가 직면한 도전과 기회를 반영하며, 특히 문왕 시기의 상경 천도는 발해의 전성기를 열어준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발해의 수도 천도 역사는 이렇듯 발해의 정치적 역량과 외부 환경에 대한 대응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동아시아 역사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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