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집사성(執事省)은 651년 신라 진덕여왕 5년에 설치된 집사부(執事部)에서 유래된 관청으로, 왕정의 기밀사무를 담당하였습니다. 이 기관은 왕명의 전달과 시행 여부를 관리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신라 여러 관청을 총괄하는 최고 관청의 지위를 가졌습니다. 집사성은 왕권 강화와 중앙집권적 통치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설치된 중요한 기관이었습니다.
2. 집사성의 설치와 변천
집사성의 기원은 신라 초기 재정 업무를 담당했던 품주(稟主)에서 시작됩니다. 품주는 왕의 가신적 존재로 시작했으나 왕권이 강화되면서 국가 전체 재정을 담당하는 공적 관청으로 발전했습니다.
651년, 품주를 개편해 집사부를 설치하면서 왕의 명령을 전달하고 감찰하는 기능이 추가되었습니다. 이때 집사부의 장관은 중시(中侍)로, 관등은 제5등 대아찬부터 제2등 이찬까지 임명될 수 있었습니다. 이후 경덕왕 시대에 한화(漢化) 정책의 일환으로 관직 명칭이 중국식으로 개칭되었으나, 혜공왕 시기에 원래 명칭으로 복귀했습니다. 최종적으로 829년 흥덕왕 4년에 집사부가 집사성으로 개칭되었습니다.
3. 집사부의 설치 배경
3.1 정치적 상황의 변화
신라 초기에는 귀족 세력이 강력했으며, 왕권은 상대적으로 미약했습니다. 국정은 귀족 회의체의 합의로 운영되었으며, 왕은 대표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지증왕에서 진평왕에 이르는 시기 동안 왕의 권한이 크게 강화되며 왕권 중심의 정치 체제가 점차 확립되었습니다.
3.2 왕권 강화를 위한 관제 개편
진평왕 사후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이 왕위를 계승하며 왕권 강화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러나 귀족 세력은 여전히 강력했으며, 비담의 난과 같은 정치적 위기가 계속되었습니다. 이에 김춘추와 김유신은 왕권 강화를 위해 당(唐)의 관료제도를 본받아 새로운 정치 질서를 구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집사부가 설치되어 왕명을 집행하고 왕권을 수호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4. 집사성의 위상과 성격
4.1 상대등과 중시의 역할 변화
집사부 설치 이전에는 신라 정치의 중심에 상대등(上大等)이 있었습니다. 상대등은 귀족 회의체의 대표자로, 왕권과 대립할 여지도 있는 위치였습니다. 그러나 집사부와 중시의 설치로 신라의 정치 체제는 왕 중심으로 재편되었습니다. 집사부는 왕명을 집행하고 각 관청을 감독하며, 중시는 왕의 행정적 대변자로서 여러 관원을 통솔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4.2 왕의 근친 임명과 역할
중시는 왕의 근친이나 신임 받는 인물이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왕권 강화의 방파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는 집사부가 왕의 명령을 대행할 뿐 아니라 정치적 위기 시 왕을 대신해 정국을 관리하는 역할도 담당했음을 보여줍니다.
5. 신라 하대 집사성과 귀족 세력
집사성은 왕권 강화의 도구였지만, 신라 중대 이후 점차 새로운 귀족 세력을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중시로 임명된 인물이 왕의 장인이 되거나 왕위에 오르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집사성은 왕권의 경쟁자가 되는 경우도 발생했습니다.
5.1 중시직의 정치적 영향력
흥덕왕, 헌덕왕, 신무왕 등 여러 왕이 중시직을 거쳐 왕위에 오르며 집사성이 신라 귀족 세력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는 중시직이 더 이상 왕권의 대변자에 머무르지 않고,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경로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결론
집사성은 신라 왕권 강화의 핵심 기관으로서, 왕명 집행과 행정 감찰을 담당하며 왕 중심의 정치 체제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집사성은 새로운 귀족 세력이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으며, 왕권과 귀족 세력 간의 균형을 변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신라 말기에는 중시직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집사성은 단순한 행정기관 이상의 정치적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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