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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장보고 표준영정
장보고 표준영정

1. 개요

장보고(張保皐, ?~846)는 신라 후기의 군인이자 상인이며 지방 세력가로, 동아시아 해상 교역을 주도하며 큰 부와 권력을 축적했습니다. 신분의 벽에 막혀 신라에서 뜻을 펼치지 못했던 그는 당나라에서 군인으로 활동하다가 귀국하여 전남 완도에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했습니다. 장보고는 해적들을 소탕하고 당, 신라, 일본 사이의 국제 무역을 장악했으며, 왕위 계승 분쟁에 참여해 신무왕을 즉위시키기도 했으나 결국 암살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2. 큰 세상으로 나가 바다를 알게 되다

장보고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각각 궁복(弓福)과 궁파(弓巴)로 기록된 인물입니다. 그는 바닷가 출신의 가난한 평민으로, 신라의 신분 제도인 골품제에 의해 사회적 상승이 제한된 상황에서 당나라로 건너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서주절도사 휘하의 무령군에서 군사 경력을 쌓으며 탁월한 무예 실력을 발휘해 소장(小將) 지위에까지 오릅니다.

신라의 해상 교역로
신라의 해상 교역로

당시 당나라는 절도사들이 각지에서 독립 세력을 형성하며 분열되고 있었으며, 장보고는 군사적 경험과 해상 교역의 중요성을 체득하게 됩니다. 중국의 산둥반도 등 해안 지역에는 많은 신라인들이 모여 살았으며, 이들은 상업과 해운업에 종사했습니다. 장보고는 이들과 교류하며 신라와 당 사이의 해상 교역과 해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3. 신라로 돌아와 바닷길을 장악하다

장보고는 828년 흥덕왕을 만나 청해진 설치를 제안하며 신라를 위협하는 해적들을 소탕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왕의 허가를 얻어 그는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대사(大使)로 임명되어 군사력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바닷길을 장악합니다. 청해진은 단순한 군사 기지가 아닌, 신라 중앙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독립 세력의 근거지로 기능했습니다.

당에 만들어진 신라방 풍경(독립기념관)
당에 만들어진 신라방 풍경(독립기념관)

장보고는 해적 소탕 이후 당, 신라, 일본 사이의 교역로를 장악하며 도자기, 비단, 향료 등의 고가 물품을 거래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840년에는 독자적으로 일본에 사신을 파견해 외교 교섭을 시도했으나 일본 조정의 거절로 무산되었습니다.

 

4. 법화원과 국제적 영향력

장보고의 영향력은 중국과 일본까지 미쳤습니다. 그는 산둥성 적산에 법화원(法華院)이라는 사찰을 건립해 지역 사회와 신라인들의 중심지로 삼았습니다. 또한 일본 승려 엔닌이 당에서 귀국할 때 장보고의 도움을 요청할 만큼, 그의 해상 세력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습니다.

장보고는 인재를 아끼고 백성들을 규합하며 세력을 키워나갔습니다. 능력 있는 인재라면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받아들였으며, 이로 인해 어려운 처지에 놓였던 정연도 장보고에게 돌아와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5. 왕위 계승 분쟁과 정치 무대 진출

흥덕왕의 후계 문제로 벌어진 왕위 계승 분쟁에서 장보고는 김균정의 아들 김우징(신무왕)을 도와 민애왕을 제거하고 신무왕을 즉위시킵니다. 장보고는 자신의 딸을 왕비로 들이는 조건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 했지만, 신무왕의 급작스러운 사망과 문성왕의 즉위로 그의 계획은 무산되었습니다.

장보고가 활동하던 시기 견당무역선을 복원한 모습(전쟁기념관)
장보고가 활동하던 시기 견당무역선을 복원한 모습(전쟁기념관)

6. 꿈을 이루지 못하고 맞이한 비극적 최후

장보고의 세력이 커지자 신라 중앙 진골귀족들은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장보고는 청해진에서 반란을 일으키지만, 염장(閻長)의 계략에 속아 암살당하며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의 죽음으로 청해진 세력은 약화되었고, 결국 신라 중앙군의 공격을 받아 몰락합니다. 851년 청해진은 폐쇄되고 주민들은 강제 이주되었습니다.

 

7. 장보고의 유산과 영향

비록 장보고의 꿈은 좌절되었지만, 그의 도전과 정신은 신라 말기의 지방 호족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는 신라의 골품제 사회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으며, 그 정신은 고려 건국에 이바지한 지방 세력가들에게로 이어졌습니다.

장보고는 단순한 군사 지도자가 아닌, 해상 무역을 통해 동아시아 국제 교류를 활성화하고,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려 했던 선구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업적은 오늘날까지도 바다를 경계 없는 세계로 바라보는 중요한 교훈을 남기고 있습니다.

 

결론

장보고는 신라 사회의 한계를 넘어 동아시아 해상을 누비며 새로운 세상을 꿈꾼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해적 소탕과 국제 무역을 통해 부와 권력을 쌓았으며,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비극적 최후에도 불구하고, 장보고의 도전 정신은 여전히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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