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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늑도 유적과 한일 교류: 철기 시대의 국제 무역 항구

사천 늑도 전경
사천 늑도 전경

개요

사천 늑도 유적은 남해안의 작은 섬, 사천과 남해 창선도 사이에 위치한 섬으로, 풍부한 유적과 유물이 발굴된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기원전 2세기 경, 이곳에서 발견된 덧띠토기, 철기, 그리고 일본 야요이 시대의 토기들은 한반도와 일본, 그리고 중국 등 여러 지역 간의 활발한 교류를 보여줍니다. 특히 북부 규슈의 야요이 시대 토기가 대량으로 출토되었고, 중국 한나라의 청동 거울, 동전, 항아리, 유리구슬 등의 유물들도 발견되어 당시 바닷길을 통한 국제 교역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늑도 마을의 모습

늑도 마을은 집터, 무덤, 그리고 조개더미로 크게 나뉩니다. 집터는 섬 전체에 분포하며, 평면 형태가 둥글거나 네모난 등 다양한 형태를 띱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섬에서 발견된 온돌 시설입니다. 이 온돌은 아궁이와 연결되어 집안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했으며, 이는 연해주 지역에서 발견되는 온돌과 유사하여 두 지역 간의 교류가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무덤의 경우, 독무덤과 움무덤이 주로 발견되었으며, 어린이는 독무덤에, 어른은 움무덤에 매장된 것으로 보입니다. 조개무지에서 발굴된 유골을 통해 당대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뼈로 알 수 있는 늑도의 사람들

늑도의 조개무지에서 발견된 사람의 뼈는 당시 사람들의 키가 160cm 미만임을 보여주며, 특히 주목할 만한 유골은 살아생전 송곳니가 빠진 여성의 머리뼈입니다. 이는 일본의 야요이 시대에 있었던 발치 풍습과 유사해 한반도와 일본 간의 문화적 교류가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또한, 야요이 시대의 인골과 형질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한반도 남부와 일본 간에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늑도에서 발견된 동물들

늑도 유적에서는 다양한 동물들의 뼈가 출토되었습니다. 특히 사슴과 멧돼지 뼈가 많이 발견되었으며, 이들은 주로 육지에서 사냥한 후 해체해 섬으로 가져온 것으로 보입니다. 닭뼈도 많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특정 크기에서 닭을 잡아먹었던 흔적으로, 가축으로 기르던 닭의 존재를 암시합니다. 또한, 무덤에서 발견된 개의 뼈는 죽은 자를 보호하기 위해 함께 묻는 전통과 관련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천 늑도 유적에서 출토된 중국 동전(오수전·왼쪽)과 일본 이키섬 하루노쓰지 유적에서 출토된 중국 동전(오수전).
사천 늑도 유적에서 출토된 중국 동전(오수전·왼쪽)과 일본 이키섬 하루노쓰지 유적에서 출토된 중국 동전(오수전).

철기의 등장

늑도 유적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 중 하나는 철기입니다. 철로 만든 칼과 사슴뿔로 만든 손잡이가 특징인 도구들은 일상 생활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었으며, 이는 철기의 대중화를 보여줍니다. 또한 철기의 제작 흔적도 발견되어 늑도에서 철기 제작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국제 교역항구 늑도

늑도 유적은 철기 시대 한반도 남부의 주요 국제 교역항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철기를 중심으로 한 교역이 이루어졌으며,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이곳을 통해 철과 생활 용품을 교역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지배자에 대한 명확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늑도 내에서 계층적인 분화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늑도에서의 교역은 중국 군현과 한반도 내 세력들, 일본 야요이 시대의 우두머리들 간의 교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기원 전후로 바닷길이 바뀌면서 늑도 유적의 사람들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야요이 사람들의 이주와 정착

늑도 유적에서 출토된 일본 야요이 토기는 전체 출토 토기의 5% 정도를 차지하지만, 한반도 남부와 일본 간의 문화적 혼합을 나타냅니다. 이는 양 지역 간의 국제 결혼과 문화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로, 인골 분석을 통해 일본 야요이 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사람들과 유사한 형질이 확인되었습니다.

사천 늑도 유적에서 출토된 일본 야요이 시대 토기. 국립진주박물관
사천 늑도 유적에서 출토된 일본 야요이 시대 토기. 국립진주박물관

또한 김해 구산동 유적에서는 늑도보다 더 많은 야요이 토기가 출토되었으며, 이는 한반도 남부에서 많은 야요이 사람들이 정착했음을 시사합니다. 김해 회현동 조개무지에서도 야요이 시대의 독무덤이 발견되어, 철을 구하기 위해 많은 야요이 사람들이 한반도 남부에 정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

사천 늑도 유적은 철기 시대 한반도 남부의 중요한 국제 교역항으로, 철기를 중심으로 한 한일 교류와 국제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다양한 유물과 유적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문화 교류를 엿볼 수 있으며, 특히 철기를 둘러싼 교역의 흔적은 늑도가 국제 무역항으로서의 역할을 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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