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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사찰과 불교의 자취

정릉사 전경(복원)
정릉사 전경(복원)

고구려는 동북아시아 역사에서 강력한 고대 왕국으로, 그들의 문화와 종교 역시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고구려의 불교 전파와 사찰 건립은 중요한 문화적 유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구려의 사찰은 그들의 불교 신앙을 담아내며,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번 글에서는 고구려 사찰의 역사와 발굴된 유적지들을 중심으로, 고구려 불교 문화의 자취를 살펴보겠다.

 

고구려 불교의 전래와 첫 사찰

불교의 공인

고구려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해진 것은 372년, 소수림왕 2년의 일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전진(前秦)의 부견(符堅)이 사신과 함께 승려 순도(順道)를 보내 불교 경전과 불상 등을 전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불교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고구려에서 공인되었고, 그로부터 3년 후인 375년에는 고구려 최초의 사찰인 초문사(肖門寺)이불란사(伊弗蘭寺)가 창건되었다.

이 두 사찰은 승려 순도와 아도(阿道)를 머무르게 한 곳으로, 당시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國內城)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사찰들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발굴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는 이후로도 평양을 중심으로 여러 사찰을 건립하며 불교 신앙을 확장시켰다.

 

문헌 기록 속의 사찰

『삼국사기』에는 393년(광개토왕 2년)에 평양에 9개의 사찰을 건립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한 498년(문자왕 7년)에는 금강사(金剛寺)를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금강사는 현재 평양 청암리에서 발굴된 사지로 알려져 있다.

또한, 고구려 말기에는 보덕(普德)이라는 승려가 평양에서 활동하며 여러 사찰과 불교 탑을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국유사』에는 보덕이 신비한 인물의 지시로 땅을 파서 8각 7층 석탑을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석탑이 있던 곳은 영탑사(靈塔寺)로 추정된다. 이는 고구려의 불교 신앙과 그로 인한 사찰 건립이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발굴을 통해 드러난 고구려 사찰

정릉사지

정릉사지는 고구려 건국 시조인 동명왕의 묘라고 전해지는 동명왕릉 근처에 위치한 사찰로,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정릉사는 고구려 사찰 중에서도 중요한 유적지로, 팔각형 목탑을 중심으로 동·서·북쪽에 금당이 배치된 1탑 3금당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가람배치는 고구려 사찰의 공간 구성 특징을 보여준다.

정릉사지 보광전
정릉사지 보광전

정릉사지에서는 기와, 치미, 토기편, 금동장식물 등이 출토되었으며, 특히 '定陵', '寺'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편들이 발견되어 이곳이 정릉사였음을 알 수 있다. 이곳은 1993년에 복원되었으며, 북한 국보문화유물 제173호로 지정되었다.

 

금강사지

금강사지는 평양 대성구역 청암리토성 안쪽에 위치하여, 문자왕 7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1938년 일제의 발굴을 통해 팔각 목탑과 금당, 강당 등의 사지(寺址)가 확인되었다. 특히 팔각 목탑은 당시 고구려 건축의 정교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금강사지
금강사지 모형 복원물

이 사지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금동비천상, 금동 꽃 장식물, 금동 방울 등이 출토되었다. 금강사지는 일본의 아스카데라(飛鳥寺)와 유사한 가람배치로 주목받고 있는데, 이는 고구려 불교 문화가 일본 불교에 미친 영향을 시사한다.

 

상오리사지

상오리사지는 평양 대동군 임원면 상오리에 위치한 고구려 사찰 유적으로, 팔각 목탑과 3개의 금당이 배치된 1탑 3금당 형식의 사찰이다. 이는 금강사지와 유사한 구조로, 고구려 사찰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발굴 당시 이곳에서는 목탑과 금당, 그리고 불교와 관련된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고구려 사찰의 건축적 특징

고구려 사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1탑 3금당 형식의 가람배치이다. 팔각형의 목탑을 중심으로 동·서·북 방향에 금당을 배치하는 구조는 정릉사지와 금강사지에서 모두 확인되었다. 이러한 건축 양식은 고구려의 불교 사찰들이 규칙적이면서도 기능적으로 구성되었음을 보여준다.

고구려 사찰의 이러한 배치 방식은 일본 불교 사찰 건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 나라의 아스카데라와 같은 사찰들이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건축양식으로 유명하다. 이는 고구려가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 불교 문화의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시사한다.

또한, 고구려 사찰에서는 8각 다층탑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는 고구려의 불교 신앙이 심화됨에 따라 건축적 상징물로 자리 잡은 것으로, 이후 고려시대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려의 묘향산 보현사나 오대산 월정사에 세워진 8각 다층탑들은 고구려 불교 건축의 전통이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묘향산 보현사
묘향산 보현사
오대산 월정사
오대산 월정사

 

고구려 사찰의 유산과 그 의미

고구려 사찰들은 대부분 현재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소실되었지만, 발굴을 통해 그 일부가 밝혀지면서 고구려 불교와 건축의 위상을 재조명할 수 있게 되었다. 정릉사지, 금강사지, 상오리사지를 비롯한 다양한 유적지는 고구려가 불교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발전시켰음을 증명한다.

또한, 고구려 사찰 건축은 동북아시아 불교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과의 문화 교류를 통해 고구려의 사찰 건축 양식이 전해졌고, 이는 일본 초기 불교 사찰의 건축적 기초가 되었다.

고구려 사찰의 발굴과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이를 통해 고대 동북아시아 불교 문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들이 계속해서 발견될 것이다. 앞으로도 고구려 사찰 유적지에 대한 지속적인 발굴과 보존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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